[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2020 서울국제음악제(예술감독 류재준)가 11월 1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여정을 끝맺었다. 올해 3월 타계한 작곡가 ‘펜데레츠키’로 시작,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로 마무리한 이번 음악제에서는 ‘위대한 작곡가들’의 주제에 걸맞게 다양한 작곡가들의 풍성한 곡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서울국제음악제의 메인 작곡가이며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의 작품들을 가곡부터 교향곡까지 다양한 편성으로 만나볼 수 있어 베토벤의 해를 실감케 했다. 또한, 코소보의 국가 작곡가 멘디 멘디치(Mendi Mengjiqi)와 한국의 작곡가 김택수의 작품이 3년 전부터 서울국제음악제의 위촉으로 준비되어 초연된 점은 과연 괄목할 만한 점이다.
11월 1일 저녁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폐막음악회 <앙상블 오푸스 ‘음악과 함께’>가 열렸다. 첫 곡은 모차르트 <플루트 사중주 4번>이었다. 정답고 편안한 A장조 으뜸화음에서 첫A음의 플루트 선율이 시작되자, 11월의 첫 시작 일요일 저녁8시에 이곳에 관객으로 찾아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성현의 플루트는 현악기와 이질감 없이 너무나도 부드럽고 윤기 있게 선율과 꾸밈음으로 기품을 표현하였다. 1악장 중간부에서 진분홍 드레스가 잘 어울린 비올라 이한나는 예쁘고 안정감 있게 빠른 패시지를 춤추듯이 잘 뽐내주었다. 2악장 미뉴에트의 경쾌한 붓점 상행 선율과 변주, 3악장 론도는 플루트 협주곡 같으면서도 바이올린(김다미), 비올라, 첼로(김민지)와 짤막하게 주고받는 선율에서 이들 연주자 사이에도 우애가 느껴졌다.
다음으로 김택수 작곡가의 <소나타 아마빌레>는 남성작곡가임에도 조선시대 여인의 ‘사랑’을 콜레뇨, 글리산도 등 바이올린의 현대음악 고난도 기교로 자세하게 잘 표현했다. 1악장 ‘끼’는 기생에 관한 악장인데, G#음으로 시작 9도 도약의 글리산도 주제가 윤기있고 농염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치밀한 기교로 어려운 현대 음악곡을 전혀 안 어려워보이게 했다. 후반부에 경기민요 태평가 선율이 하모닉스로 나올 때는 운치까지 있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피아노 반주는 부드러운 톤과 밀도가 인상적이었는데, 건반을 손가락만으로 일시적으로 때리거나 치는 소리가 아니라 손가락에 온몸의 무게를 잘 실어서 내는 소리였다. 때문에 폭넓고도 부드러운 음색으로 백주영의 기교를 전체적으로 잘 감싸안아 주었다.
2악장 ‘모’는 어머니가 밤낮으로 기도하는 모습에서 착안해, ‘비나리’, ‘반야심경’의 리듬과 분위기를 표현했다. 목탁 두드리는 소리처럼 바이올린이 중음주법으로 활대로 현을 두드리는 ‘콜레뇨 바투토’를 사용했는데, 이 미묘하게 틱탁거리는 소리가 다음 기도내용을 궁금하게 했다. 중간부에서는 저음의 완전4도를 기본으로 글리산도와 꾸밈음으로 읊조리는 선율, 이후 전음역을 빠른 아르페지오로 오가는 바이올린 선율이 피아노 높은음의 클러스터 반주장단과 어울리면서 억척스럽고도 묘한 분위기가 엄마의 심정을 대변했다. 마지막에 미분음으로 하행하는 피치카토와 콜레뇨는 마음을 다잡아보려는 깨달음의 목탁소리 같았다.
3악장 ‘무’는 무당에 관한 악장으로 무당 본인은 원치 않았던 신들의 사랑을 영접할 수밖에 없는 과정, 내림굿을 표현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모두 초고음에서 시작해서 바이올린은 저음G현으로 내려가는데, 신이 하늘에서 무당몸으로 들어가려 하는 것처럼 들렸다. 바이올린의 빠른 더블스탑, 글리산도와 트릴, 피아노의 때리는 듯한, 혹은 징의 음향이 연상되는 저음 클러스터, 셋잇단음표의 빠른 아르페지오는 바이올린 무당과 피아노 신의 결투였다. 마지막은 무당방울처럼 피아노의 초고음과 바이올린이 브릿지 아래의 초고음으로 결국 신내림 받음을 암시한다. 연주자의 세 번 커튼콜과 관객의 환호갈채에 세 번의 커튼콜이 이어졌고 작곡가도 무대인사후 연주자에게 양손엄지를 치켜올려 보였다.
후반부 첫곡은 <베토벤 육중주>였다. 이 곡은 호른에게는 빠른 패시지와 기교로 어려운 레파토리로 꼽히는데, 이석준과 주홍진의 호른연주는 기교와 현악사중주와의 조화가 돋보이는 연주를 펼쳤다.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에서는 상하행스케일을 현악기와 호른간 주고받으며 호른의 빠른 상행스케일이 특징을 주며, 제2주제에서는 호른과 첼로의 선율대화가 인상적이었다. 2악장 아다지오부터는 두 호른의 3화음으로 더욱 우아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되며 3악장까지 호른이 주도해간다. 3악장 론도 처음에 현악기가 아니고 호른이 빠른16분음표를 동반해 경쾌하게 한옥타브 하행하는 주제는 정말 기분좋고 멋지다. 호른주자 이석준과 주홍진은 춤곡 느낌을 잘 살리며 마지막 팡파르까지 조화롭고 힘찬 호연지기의 기운을 느끼게 해주었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브라보, 브라비가 터져나왔다.
마지막은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번>이었다. 1악장은 D장조 근음에서 상행하는 익숙하고도 웅장한 선율로 시작해 무궁동이 이어졌다. 김다미의 바이올린과 조성현의 플루트가 선율을 주고받는 우아한 귀족 같았으며, ‘뻐꾹’ 하는 단순한 3도 하행 음형으로도 바흐는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지을 수 있나 자연 속에 온 것같이 정다웠다. 그런데 악장 끝무렵에 현악기와 플루트를 묵묵히 반주해주던 문지영의 하프시코드가 카덴차로 갖가지 현란한 기교로 존재를 드러내니, 현을 뜯는 방식의 이 고집스런 중세악기가 그 어느 요즘의 최첨단악기나 전자음향보다도 더 새롭고 미래의 것으로 느껴졌다.
2악장 시작에서 하프시코드가 B단조 으뜸화음을 누르자마자 강한 애수가 밀려오며 바로 F#음으로 시작한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붓점 선율에서 그래도 걸어보려는 인생에의 의지가 느껴진다. 전체 12개 악기로 웅장하게 끝난 1악장 후 이렇게 단촐하게 세 개 악기만으로 집중감을 주며 더욱 깊이 있는 감정과 슬픔을 느끼게 해주다니 기가 막히다. 2악장 주제가 재현할 때 플루트의 F#음만 들어도 다시 슬픔이 밀려올 찰나 A장조 경쾌한 리듬으로 하행하는 3악장 주제가 시작되어 세계의 큰 산맥 어디라도 거뜬히 걸어갈 것 같은 더블베이스(박정호) 위에 현악챔버와 세 개의 독주악기가 다시 무궁동으로 리듬을 주고받으며 긴 박수와 브라보, 브라비 속에 앵콜이 시작되었다.
‘G선상의 아리아’가 차분하게 흘러나오자 서로의 음역을 배려하며 현악기가 결코 선율을 높은 음으로 뽐내지 않고 자신의 음을 낮게 다스리며, 중간부에서는 마침내 호른과 플루트에게 선율을 내어주는 이런 모습과 음의 조화에 관객들은 박수갈채와 브라보, 브라비를 터트리며 일부 관객은 기립박수를 쳤다. 앵콜 후 객석에서 '감사합니다'라고 관객이 외치며 화답하는 장면, 11월 첫날의 일요일 저녁임에도 한칸 띄어앉기로 꽉 찬 객석은 SIMF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애정, 힐링의 감격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편, 이번 2020 서울국제음악제의 공연영상은 11월 18일부터 KBS 중계석(KBS 1 TV)에서 순차적으로 시청 가능하며, 12월부터 오푸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식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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