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은수(단국대학교 작곡과 교수)
시작부터 꽉 짜여진 6인의 작곡가가 6개월가량의 시간을 앞에 두고 만나서 서로 “나는 이런 편성으로 하겠다” 라는 이야기를 한 것과 악보 제출 마감시간을 정한 것 말고는 없었다. 마감시간이 다가오자 알람이 오고, 프로그램노트 등의 수정사항을 카톡으로 공유한 것 밖에는 없었다. 사전에 각자 연주자들과의 리허설을 각자 가지고 당일 리허설도 각 작품당 30분 간격으로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잘 흘렀다. 연주회장 대관료와 100부의 음악회 프로그램 인쇄료가 공동으로 부담해야할 금액의 전부였다. 모든 경비를 똑같이 나눈다는 것만큼 연주자와 작곡가가 동등하게 주인이 되어 음악회를 이끌어간다는 개념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이뿐인가? 덤으로 얻은 것은 작곡가 스스로가 혹은 배우자가 협력하여 만들어낸 영상물과 빠른 리뷰. 이 모든 것들의 신속함에 놀라고 또 놀랐다. 창작하는 이의 기본 덕목. <배우자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라>. 이들은 앞으로도 길게 갈, 성공한 작곡가이다.
지금까지 작곡발표회를 숱하게 하였는데 이렇게 소리 없이 성공적으로 비용도 들이지 않고 일을 해내는 작곡가들의 협업을 보면서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라며 거의 충격에 빠졌다. 고질적인 문제를 알면서도 혼자 해결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주머니만 열었다. 그것도 크게, 점점 더 크게. 그리고는 혼자 나 자빠졌다. 더 이상 곳간이 남아나지 않을 만큼 박박 긁어대니 경제력보다 창의력이 먼저 바닥나고, 끈기도 흥미도 바닥이다. 창의력과 경제력의 상관관계.
이번 연주는 긴 세월 창작곡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온 힘을 기울였던 피아니스트의 전설 이혜경의 값진 열매이다. 묵묵히 뚜벅뚜벅 소처럼. 큰 눈을 껌뻑이는 이혜경은 말이 없다. 몸으로 이야기한다. 그의 깊은 뿌리는 언젠가 주렁주렁 열매 맺을 그 날을 알고 있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휠새. .> 깊이깊이 뿌리내렸다. 그의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은 구덩이를 넓게 넓게 같이 팠다. 끊임없이 물을 주며 가물 때는 서로 품앗이로 어떻게든 샘물을 팠다. 위대한 동업이다.
이날의 음악회는 신선한 날것이었다. 작곡가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점수 받을 것도 아니고 콩쿨에 출품하는 것이 아니니, 악보심사를 거칠 일이 없고 걸러질 일도 없이 작곡했다. 그래서 좋았다. 그대로 무대에 올라갈 것이라는 자유로운 작곡. 당연한 작곡가의 권리이지만 이래저래 난이도나 길이 등등 묵언하에 생각할 제약조건들이 따라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아현동아이들>, <둘이 함께>, <을지로 사운드> 등등 이날의 작품은 모두 삶의 찬가요, 서울의 찬가였다. 서울 한복판의 소리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할 수만 있다면. . .그 소리를 듣는 행복감, 그 기운으로 산다. 작곡가의 사는 방식이다. 이야기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속에서 열병이 난다. 벙어리로서의 답답함에 속에 열이 찬다. 그것들을 끄집어 내고 서로 공명하니 그 신바람을 누가 막을 것인가? 우리는 무대가 고프다. 우리에게 무대를 달라.
이혜경은 큰 일을 한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소리치게 하였다. 말없는 그녀가 수십년간 묵묵히 지켜온 그 행동이 천지를 개벽할 것이다. 그녀는 조용한 영웅이다.
2022년 7월3일 강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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