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천경자 화가 탄생 100주년 기념 음악극 '꽃과 색채와 바람' 공연이 지난 26일 저녁 7시 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은 제78회 (사)한국여성작곡가회(회장 강은경) 봄 정기발표회 '보이는/보이지 않는 소리'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여성작곡가회 일곱 명 회원의 음악작품이 앙상블 비트윈(피아노 김아름, 플루트 이은미, 클라리넷 백양지, 바이올린 안세훈, 첼로 김경란), 소프라노 이지혜, 메조 소프라노 김윤희, 테너 손재연, 생황 김효영에 의해 멋지게 선보여졌다.
무대 영상에 천경자 화백(1924~2015)에 관한 각 음악작품의 배경텍스트가 띄워져 극의 분위기를 돋우고 각 곡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첫 곡의 이윤경 작곡가는 천경자의 수필집과 관련서적을 기초로 나래이션 글을 구성하고 각 곡의 시작마다 낭독하여, 마치 천경자 화백의 삶을 대변하듯 음악극을 이끌며 생동감을 주었다.
이 날 각 장면의 성악곡 텍스트는 각 작곡가들이 직접 가사를 구성하여 화가의 삶에 더욱 가까이갈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각 작곡가의 작품제목 외에 음악극을 이루는 '프롤로그 - 예술가의 고독', '에피소드I - 꿈, 사랑의 모정', '에필로그 - 예술혼으로 해방된 자아' 등으로 장면을 이루게 하여 천경자화백의 일대기 모놀로그를 보는 효과를 주었다.
'Prologue - 예술가의 고독' 순서는 이윤경 작곡가의 '찬란한 고독' 작품으로, 35마리의 뱀이 서로 뒤엉켜있는 천경자의 '생태'(1951년 작)을 소재로 했다. 붉고 푸른 머플러를 길게 드리운 작곡가 이윤경이 무대 왼쪽에 앉아 선명한 목소리로 주목을 시켰다.
그가 말하는 문장들이 작품감상에 영감을 주고 있었는데, 공허한 음색의 클라리넷 선율과 어울렸고, 바이올린과 첼로는 우글거리는 뱀처럼 움직인다.
한 맺힌 사랑의 이야기를 표현한 곡의 두 번째 부분은 로맨틱한 화음이 들렸으며, 한과 고독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예술세계를 표현했다는 세 번째 부분은 그로테스크하게 생명력을 드러내었다.
이남림의 '나의 사랑 나의 꿈'은 'Episode I - 꿈, 사랑과 모정' 대목으로 표현되었다. 천경자 화백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년 작)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쉰 넷이던 화가가 결혼해 첫 아이를 낳았던 22세를 회상하며 그린 그림이다.
여인의 머리에 네 마리의 뱀이 가시관처럼 씌워져 있고, 한 송이 장미꽃을 들고 있다. 메조 소프라노 선율과 여기에 장단을 맞춰주는 불협화음의 피치카토, 술 타스토의 바이올린이 좋다. 움직이는 바이올린의 활털이 마치 화가의 붓끝처럼 화폭을 쓸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남림 작곡가는 이 곡을 위해 '나의 꿈 나의 사랑'이라는 텍스트(가사)를 직접 써서 팜플렛에 실었는데, 메조 소프라노가 이것을 노래할 때 시의 마지막 부분 "나의 꿈 나의 사랑 제법 화사하다"에서 '화,사'를 음절마다 강조하니 반어법처럼 산뜻했다.
조영미 작곡가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은 천경자의 동명의 그림을 소재로 작곡했다. 'Episode II - 정(情)과 한(恨)' 장면으로 들려줬는데, 프랑스어로 "그대는 내 기쁨이었고 내 뜨거운 꿈이었는데"라고 낭독되고, 무대 영상에는 춘향가 가사가 보이니 뜻밖이였는데, 이 프랑스어와 춘향가의 조합이 결국은 그림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작품을 들으려 깨닫게 되었다.
나래이션에서의 천경자 화백은 "그림을 그리다 힘들면 창을 듣는다. 모든 예술은 한을 승화시켰을 때 향기가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피아노가 오밀조밀하고도 강렬한 탱고리듬을 받쳐주고, 생황이 반도네온처럼 이국적 느낌을 주면서 판소리 고수같은 역할을 했으며, 고음 테너의 힘찬 노래가 절절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데 한편으론 속시원했다.
이의진의 '꽃과 나비'는 'Interlude - 내 안의 자유로움' 대목으로서 구성되었다. 이 작품은 천경자의 '꽃과 나비' , '화병이 된 마돈나'(1990년 작)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곡 시작전 이윤경의 나래이션에서 히비스커스, 국화 등 각종 꽃이름이 낭독되며 화가가 꽃그림을 그리는 당위가 설명된 것으로 이 곡의 첫 휘몰아치는 피아노 하행음은 나비의 펄럭임을 표현한 듯하다.
첼로의 증음정 반복에 클라리넷의 긴 호흡의 지속음과 플러터 텅잉, 나비의 날갯짓을 표현한 듯 하며, 첼로의 증5도 반복과 클라리넷 하행 도약의 스타카토 음이 특징이다.
후반부는 피아노의 클러스터, 빠르게 상행해 지속되는 클라리넷, 무궁동 같은 첼로의 움직임이 다양한 꽃과 나비의 순간들을 표현하였다.
김청은 작곡가의 '내 슬픔의 전설'은 'Episode III-고통의 승화' 장면이었다. 이 곡은 화가의 특정작품이 아니라 경향, 요소를 표현하고 있었다.
첫 부분은 베이스 플루트가 대금 같이 청아하고 주욱 뻗은 점잖은 소리와 부르르 터는 플러터 텅잉, 오버블로잉으로 한참을 집중시키는데, 이것으로 천경자 화가 그림 인물들의 절제된 슬픔에 접근했다.
두 번째 부분에서 소프라노의 노래가 저음과 고음을 오가며 무조로 강렬히 노래하고, 플루트도 빠른 아르페지오로 고음에서 저음으로 이동하거나 하며 천경자 그림 속의 기쁨과 슬픔, 화려함 속의 고독 등 대비되는 감정의 공존을 드러냈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고음 소프라노의 처절한 노래와 피아노의 톤 클러스터, 플루트의 반주와 더블링 되어 이들이 만드는 불꽃같은 선율로써 화가의 터질 듯한 예술혼을 표현해냈다.
김희라의 '꽃과 색채와 바람'은 'Episode IV -영혼의 여행' 순서로 이날 전체음악극의 클라이막스 부분에 위치하고 다른 곡 스타일과도 대비되며 인상을 주었다.
이 곡은 "지나온 길이 평탄하지 않아 ... 자연에서 얻어지는 고독한 행복감에 젖어 오직 작업하는 일만이 편한 길이었다."라고 천경자 화백이 말한 문구에서 영감을 얻었다.
현대음악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음향의 움직임이 강했는데, 플루트와 바이올린의 점묘적이고 간헐적인 음진행에 성악가는 분절된 단어들을 외치고 읊조린다.
곡의 전반부는 모래, 태양과 바람, 사막의 황량함이 표현되었고, 후반부는 조금더 정적인 움직임으로 화가가 염원했던 색채를 통한 정체성의 발견을 표현했다.
마지막은 이날 연주한 앙상블 비트윈의 음악감독인 김지현 작곡의 '꿈과 바람의 세계'였다. 'Epilogue - 예술혼으로 해방된 자아' 장면이었는데, 박경리가 천경자를 회상하며 쓴 글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 갈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다...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라고 낭독한다.
또한 "영원히 미완성인 예술. 건배!"라고 외치며 철저한 무조와 박자감의 해체로 음악이 시작한다.
천경자가 그의 저서 '자유로운 여자'에서 '어디서 일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들 - 그 위에 인생이 떠있는지도 모른다'라고 했듯이, 그림을 통해 꿈과 환상을 쫓으며 바람처럼 담담히 미완성의 인생을 소프라노가 노래하고, 피아노와 첼로는 바람이 되어 소프라노를 감싼다.
중심조나 중심음 없이 끝없이 부유하는 선율, 악기간 어떠한 음간의 협력이나 속박하는 관계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곡의 종결도 바람같은 인생의 한복판처럼 느껴지게 하였다. 마지막에 소프라노의 "나를 살게 하는 것"이라는 가사가 비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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