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오페라앙상블의 현대오페라 '달'. 우리말 가사로 현대오페라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했다. ⓒ문성식기자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오페라는 어렵다. 현대오페라는 하물며?
위의 일반적인 생각, 즉 보통 '고정관념'이라고 하는 흔히 범하는 오류를 예술공연 관람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예술가의 새로운 시도나 한 예술작품의 좋은 점을 발견할 기회마저도 놓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만을 초래할 뿐이다.
삶이 어디 늘 상쾌하고 솜사탕 같을까. 예술이 삶을 모델로 했기에 다양한 아픔과 이상함, 어색함을 모두 표현하는 것인데, 보통은 예술에게 '완벽할 것', '통쾌할 것', '현실의 아픔을 잊게 해줄 것', '내가 아는 것을 표현해줄 것'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면에서 2018년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 선정작으로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11월 2일부터 4일까지 공연중인 서울오페라앙상블 현대오페라시리즈 IV '달‘은 인간의 달에 대한 보편적인 욕망을, 현대오페라 두 편의 색다른 연출을 통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리였다.
무조음악의 선구자 아놀드 쇤베르크(1874-1951)가 알베르 지로(Albert Giraud)의 연작시집의 21개 시에 곡을 붙인 <달에 홀린 삐에로>, 그리고 극음악의 개척자 칼 오르프(1895-1982)가 그림형제의 동화를 토대로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한 <달>을 국내에서 그것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하던가?!
에어리얼리스트 차정훈의 줄타기 동작은 소프라노 박하나(1일 리허설 사진)의 노래를 묘사하며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문성식기자
11월 2일 공연에서 전반부 <달에 홀린 삐에로>의 소프라노 이효진은 명징한 독어 발음과 부드럽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달과 삐에로를 대변했다. 2번 '콜롬비네'의 창백한 꽃 가사에서는 꽃을 움켜쥐어 흐트러트리고, 19번 '세레나데'의 삐에로가 비올라를 긁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손등을 활로 긋는 등 카리스마 있는 모노드라마로 열연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드리워진 두 가닥 천도 극에 우아함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것을 삐에로로 분장한 에어리얼리스트 차정호가 곡 11번 '붉은 미사',13번 '참수', 20번 '귀향' 등에서 극 내용처럼 천을 배처럼 흔들고 타거나 높이 오르다 갑자기 툭 떨어지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가슴이 철렁했는데, 이렇게 여러 동작을 통해 덧없고도 위태한 인생의 면면을 표현하면서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14번 '십자가들'의 '..붉은 왕관...성스러운 십자가들..' 가사에서는 단상에 선 소프라노의 그림자가 크게 비춰지고, 달영상에 가시덤불이 드리워지면서 십자가에 걸린 예수를 느끼게 했다. 이처럼 7인조 네오필리아심포니 앙상블의 명징한 반주, 각 21곡마다 매번 미묘하게 변하는 배경의 달 영상과 은은한 조명, 가사 한글자막의 글자체까지, 삐에로로 가장된 인간의 욕망이 절제와 그로테스크를 넘나들며 흥미진진하게 표현되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현대오페라 '달에 홀린 삐에로' 14곡 '십자가들'. 가사내용을 그림자와 영상효과로 연출하여 극에 몰입감을 주었다. ⓒ문성식기자
후반부 칼 오르프의 <달>은 우리말 가사와 성악가들의 열연이 왠만한 뮤지컬보다도 재미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빛이 없는 동네사람 네 명이 달빛을 소망해, 죽어서도 달을 4등분해 관 속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내용이 꽁트처럼 간단하지만 위트있고,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결말되는지 음악과 극으로 풍자되는 방법이 재미있었다.
쇤베르크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지만 작곡가 칼 오르프는 조성의 해체가 아니라 더욱 조성의 강조와 반복되는 리듬으로 가사의 전달과 원시적인 힘의 전달을 중요시했다. 이것이 코믹하고 풍자적인 내용을 알기쉽게 뒷받침해주는데, 이번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우리말로 해주어서 더욱 고마웠다. (우리말 가사/장 철(서울오페라앙상블 음악감독))
해설자 역의 테너 차문수는 달의 밝은 빛과도 같은 고음의 맑은 음색으로 극의 시작과 중간, 끝에 극의 내용을 잘 전달해주었다. 해설자와 동행하는 어린아이 역 원서윤도 둥근 LED조명 풍선을 들고 극에 동심을 불어넣어주었다.
해설사 역 테너 차문수와 어린아이 역 원서윤이 극 후반부 지하세계의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문성식기자
동네사람 4명의 호흡이 무척 좋았다. 바리톤 최정훈과 김덕용, 테너 유태근과 베이스 김상민은 서로 달을 차지하려는 좌충우돌의 과정을 탄탄한 노래실력과 연기력으로 보여주었다. 하늘의 달을 끌어내리는 손짓하나로 너무도 쉽게 내려 4등분으로 쪼개고, 또 관까지 들고 들어가는 동작도 재미있었다.
기다란 나무상자가 흡사 관처럼 보여 궁금했는데, 마을사람1역 차정훈이 평생 달을 돌봤으니 내 지분 하나를 무덤속에 넣어달라고 호소력 짙은 표정과 음색으로 노래한다. 그러면서 그가 관 뚜껑을 열고 마을사람 중에 제일먼저 안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키가 커서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잘 들어가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동화보다 뮤지컬보다 더 재미있게 진행되던 극에 지하세계가 시작되면서 망자들은 소주, 카드놀이 등으로 유흥의 시간을 보낸다. 배경영상의 무덤속 모습과 무대 가운데 나무뿌리 모습이 실제감을 더한다. 이 때, 베드로 역 이진수가 중후한 극저음으로 차분하게 목가적인 분위기의 노래를 부르며 망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한다.
베드로가 망자들의 소주에 분위기 맞추며 "딱 한잔더! 딱 한잔더!"라고 부르는 노래도 무척 정겹고도 흥겨웠다. 하지만, 모든 것은 제자리가 있는 법. 망자들은 관 속에 고요하게 다시 들어가고, 4조각 난 달은 다시 하나가 되어 하늘 높이 걸렸다. 공연 전반후반부에서 네오필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정갈하게 이끌던 지휘자 정주현이 "저 달 저~기 위에 걸어요!" 라고 대사하는 유쾌한 장면 역시 기억에 남는다.
죽은자들은 지하세계까지 달을 들고와 술을 마시고 있다. 베드로 역 이진수가 이제 무덤에 들어가자고 노래부르고 있다. ⓒ문성식기자
이렇게 인간에게 해보다 가까운, 소유와 욕망의 대상 달을 주제로 한 현대 오페라 두 편을 봤다. 이 두 편으로 오페라 연출에 공식 데뷔한 장누리 연출은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삐에로>는 가사자막과 영상, 무용 등 극의 분위기 연출로 현대음악과 가사에 접근할 수 있게 했고, 칼 오르프의 <달>은 쉬운 우리말과 친근감 있는 연기로 현대오페라가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1984년 창단이래 24년간 꾸준히 신작공연을 하면서 특별히 2011년부터는 현대오페라시리즈를 올리면서 그간 메노티 <영매>, 스트라빈스키 <어느 병사의 이야기>, 벤자민 브리튼 <Curlew River>(번안오페라 <섬진강 나루>로 공연)로 관객에게 다양한 음악과 내용을 알게 해준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용기와 추진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미술에서는 커다란 점 하나, 색깔하나로 캔버스 전체를 다 채워도 현대적이라고 추앙하면서, 그것이 음악으로 오면 감상의 시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가 원래아는 음악, 원래 좋아했던 내용만으로 살아간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을까? 평생 공부해도 부족한데 말이다. 서울오페라앙상블 현대오페라시리즈 IV '달' - 쇤베르크 <달에홀린 삐에로>, 칼 오르프 <달>은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11월 3일(토요일) 오후4시, 4일(일요일) 오후 4시에도 공연된다.
mazlae@daum.net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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