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연주회에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독주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 오푸스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성신여대 초빙교수)의 피아노 리사이틀 '로만틱 소나타'가 2월 27일 저녁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성황리에 연주되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하마마쓰 국제콩쿠르 1위를 비롯해 롱티보 콩쿠르, 루빈스타인 콩쿠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석권하였고, 한국과는 10년 전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인 작곡가 류재준의 권유로 인연을 맺었다. 특히 작년 코로나 한해, 공연이 가능한 기간 독주자 곁에는 어김없이 안정된 반주로 풍성한 배경을 제공해 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있었다.

2017년 독주회에서도 격찬을 받은 그의 이번 4년 만의 국내 독주회는 한마디로 따뜻한 봄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날 연주한 포레와 류재준, 그리고 1810년 3월 1일 봄을 맞이하며 태어난 쇼팽의 작품까지 따스함과 진중함이 살아 있었으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독주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이기에 충분했다.

첫 순서는 가브리엘 포레의 <녹턴 13번 나단조 작품번호 119>로 사색적이고도 격정적인 연주를 펼쳤다. 처음에 느린 싱코페이션으로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결국 감정의 깊은 곳까지 격렬하고도 빠르게 아르페지오로 파고드는 중간부, 첫부분으로 돌아오지만 애잔하고 성숙한 감정선의 마지막 부분까지, 프랑스 근대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곡가 포레 특유의 교회 종소리 같은 폭넓은 음의 울림을 잘 잡아내었다.

다음 순서로 류재준의 <피아노 소나타>(세계초연)는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심혈을 기울인 연주로 호연을 펼쳤다. 2021년 완성된 곡으로 투병생활로 고생하던 피아니스트 이효주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30분 길이의 대곡이었는데, 가끔 드뷔시나 스크리아빈, 바르톡 같기도 한데 주욱 들어보면 이내 “아! 류재준이구나”하게 된다. 1악장은 첫 도입의 햇살 중에 신비롭고 따스하게 흔들거리며 떠 있는 것 같은 제1주제가 반복, 변형되며 점차 격렬해지고 마지막은 갑작스럽게 끝난다.

2악장의 빠르게 움직이는 스케르초, 편안하고 우애스런 주제음의 3악장을 지나면, 1악장 주제가 경쾌한 템포로 변화되어 익살을 부리는 4악장 론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곡의 투명함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잘 살려 표현한 연주였으며, 1악장과 4악장으로 연결된 주제음형에서 왠지 모르게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것 같은 봄의 설레는 기분이 느껴졌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훌륭한 연주와 초연의 작품에 박수갈채와 함께 브라보를 외쳤다.
   

▲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연주는 단단한 밀도 속에 부드럽고 따스함이 살아 있었다.   ⓒ 오푸스

인터미션 후 프리데릭 쇼팽의 <마주르카 작품번호 24> 연주는 그야말로 서정미가 가득했고 청중에게 우아한 휴식이 되었다. 이 춤곡 마주르카에서는 작곡가 슈만의 피아노 작품 '다비드 동맹 무곡’이나 ‘어린이 정경’ 같은 색채도 있는데, 특히 4곡은 슈만 곡에서 격렬한 ‘플로레스탄’과 조용한 ‘에우제비우스’가 겨루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반주할 때 여유롭고 곡의 그림을 잘 그려줬는데, 이 순서에서 비로소 그것이 돌아와서 반가웠다.

대미로는 쇼팽의 <소나타 3번 나단조 작품번호 58>에서 호연을 펼쳐 브라보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각 부분 다 아름다운 선율로 워낙 유명곡인데다, 베토벤으로 치자면 소나타 32번 '함머 클라비어'와도 같은 대곡이다. 전체적으로 밀도 있고 부드러운 음색과 굉장히 빠른 리듬구간도 안 빠르게 보이도록 편하게 치고 있었다. 또한 음향용어로 말하면 ‘리미터(Limiter)'로 볼륨이 아주 센 부분을 깎는, 그런 느낌도 들었다. 그가 종종 왼발을 끌어당겨 소프트 페달을 밟으며 진중한 음색을 만드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1악장 첫 하행하는 16분음표에 연결되는 4분음표 화음 연결 주제부터 4악장까지 전체적으로 테누토가 많이 들어간 연주스타일로, 이로 인한 템포 루바토로 강박이나 중요박에 여유를 주기도 하며 치는 스타일이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반주 때나 이 날 독주회 때나 동일하게 느낀 그 ‘여유’나 ‘부드러움’, 손가락으로 건반을 강타하여 해머로 현의 쇳소리를 내지 않고 모두 동일하게 지그시 눌러내는 그 음색의 효과와 이유는 뭘까 연주회를 보면서, 또한 리뷰글을 쓰면서까지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앵콜은 더 감정이나 다이내믹의 격한 표현이 훨씬 있었다. 첫곡 슈만-리스트 <헌정>은 왼손 아르페지오와 오른쪽 옥타브 선율이 함께 웅장하고 영롱하여 관객들이 환호했고, 스크리아빈 <에튜드 작품번호 42, 제5번>로는 깊은 바다의 몰아치는 심연에 온 것 같은 왼손반주와 오른손 파워풀한 선율에 매료되면서 나는 “어? 이 폭풍 휘몰아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아까 쇼팽 때는 왜 좀 더 안 그랬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내면의 물결 같은 왼손과 오른손 선율의 쇼팽 <왈츠 작품번호 64, 제2번>까지 앵콜 3곡으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모든 면을 남김없이 청중에게 어필했다. 그나저나 쇼팽다운 음색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데. 어쩌면 이날의 쇼팽 연주를 무언가 다른 기준과 비교하고 있는 것은, 내가 2015년 쇼팽 콩쿨 우승자 조성진의 음색 등에 길들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며 쇼팽 피아노 악보 몇 개를 보니 pp는 종종 있어도 ff는 자주 있지는 않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반주할 때 좋아하게 된 점이 마일드하고 해머 때리지 않는 음색 때문이었고, 그 여유와 테누토 때문이었다. 여하튼 점점 내 식견은 짧고 알아야 할 것은 많음을 느낀다.

한편, 2021 오푸스 다음 공연으로는 제17회 앙상블오푸스 정기연주회 '봄이 오는 소리'가 4월 9일 저녁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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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준의 피아노협주곡 연주 후, (왼쪽부터) 작곡가 류재준,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지휘자 칼만 베르케스 ⓒ 오푸스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제11회 서울국제음악제(예술감독 류재준)가 지난 22일 개막해 11월 12일까지 서울 롯데콘서트홀, 예술의전당, 일신홀 등지에서 공연 중이다.

 

한국-폴란드 수교, 한국-헝가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서울국제음악제(예술감독 류재준)는 '인간과 환경'을 주제로 기상이변, 동식물멸종 등의 인간이 자초해 당면한 환경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개막일인 지난 22일 오후 8시에는 한국-헝가리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 음악회로 헝가리 죄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열렸다. 이날 공연에는 올 초 부다페스트 유람선사고의 다수의 한국과 헝가리 희생자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다뉴브 강가의 촛불'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125년 전통의 죄르 오케스트라는 예술감독 칼만 베르케스의 지휘와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함께 두 헝가리 작곡가인 리스트, 바르토크, 그리고 류재준의 작품을 통해 인간 삶에의 질문과 투쟁, 그리고 사랑과 운명이 느껴지는 호연을 펼쳤다.

 

첫 번째 순서인 프란츠 리스트의 교향시 '전주곡'은 11회 페스티벌의 포문을 여는 첫 곡이자 리스트의 생일인  22일에 공연되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1840년대의 피아노 천재 리스트가 이후 작곡가로서의 삶을 결심하면서 탄생시킨 '교향시'라는 장르 특성이 롯데콘서트홀 규모와 울림에 더해져 웅대한 스케일의 벅찬 감동으로 표현되었다. 느린 하행으로 시작해 상행하는 주제, 헝가리 다뉴브강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3박자 춤곡의 우아한 서정, 금관의 빛나는 팡파르까지 웅장한 인생행진곡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순서는 류재준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협주곡 2개악장에 30분이나 되는 대곡이었는데 바로크부터 고전과 낭만, 현대음악 어법까지를 모두 소화하여 오늘 이시대의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탄생시켰다. 1악장 피아노 고음의 트릴로 시작하여 3화음과 톤클러스터, 증음정으로 구성된 빠른 무궁동 패시지가 인상적이었다. 2악장은 오케스트라의 깊은 심연을 뚫고 피아노가 맑게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3악장은 장대한 산맥을 높이 오르며 추격전을 펼치는 오케스트라와 그 사이를 헤집고 오케스트라와 같은 듯 다른길을 걷고 있는 피아노의 대비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전반부의 두 작품, 특히 류재준의 피아노협주곡이 워낙 장대해서, 후반부 바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라는 대곡이 오히려 귀엽고 깔끔하게 들리는 편이었다. 그만큼 죄르 오케스트라가 각 악기군이 때때로 독주자가 되며 펼쳐지는 어메리칸 스타일의 헝가리 춤곡을 맛깔스럽게 연주했다는 뜻이다. 1악장 베이스와 첼로저음의 4도 상행음과 현악기 고음의 붓점과 당김음, 2악장 바순 6도화음의 익살스러움, 3악장 하프 글리산도의 몽환적 분위기, 4악장 반음계와 온음계가 섞인 이국적인 선율, 5악장 목관의 푸가토까지 다채로운 음형동작의 향연에 관객의 귀는 앵콜의 헝가리 무곡 1번으로 호강하고 있었다. 

 

 

▲풍월당 기자간담회에서의 류재준 작곡가(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 박순영


오래 전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류재준 작곡가는 24일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생각하는 환경은 자연환경보다는 오히려 인간자체를 환경이라 생각한다"라면서, "예전에는 물을 사먹는다는 개념이 없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물을 사먹지 않느냐. 지구가 온난화되어서 늦었다고 하지만 우리 후대를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 이번 페스티벌 각일 주제와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러한 환경문제에 대해 한번이라도 상기할 수 있도록 했고, 특히 26일 공연 프로그램은 펜데레츠키 선생님과 상의했다"고 말했다. 간담회 중간에 그의 피아노협주곡 3악장을 감상하는 시간 또한 가졌다.

 

그는 "이런 페스티벌을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 전부터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내년에는 모스크바 심포니 등 준비가 되어있다. 매해 수교국가와 대사관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이번에도 헝가리 연주단 비용은 모두 헝가리 측에서 다 감당해 줬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내 사비도 항상 많이 들고 있다"면서 "올해 아르코 측에서 지원금이 대폭 삭감되어 8천만 원만 받게 된 것은 무척 유감이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한편, 2009년 처음 개회해 매해 열린 서울국제음악제는 한국에 전 세계 고급 클래식동향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1월 12일까지 공연되는 이번 일정에 내일인 25일 금요일은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클라리네티스트 피터스타인과 피아니스트 라쉬코프스키의 듀오리사이틀이 일신홀에서 열린다. 토요일 26일은 예술의전당에서 류재준의 스승이자 교향곡 5번 '한국'을 작곡해 국내연주하기도 한 거장 팬데레츠키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와 '성 누가 수난곡'이 '사람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공연으로 모두 한국초연된다. 


이를 위해 전 세계 현대음악의 거장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86)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방문해 기자간담회와 26일 음악회에 지휘로 참석 예정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방한하지 못했다. 이에 지휘는 폴란드 지휘자 마쉐 투랙이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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