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오페라단 <텃밭킬러> 1막. 빛바랜 가로수, 무대를 가로지르는 전깃줄,
작은 구두수선 컨테이너 등이 암울한 생활환경을 표현한다. ⓒ 박순영 기자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이경재)의 <텃밭킬러> 프레스콜이 7월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진행되었다.
오페라 <텃밭킬러>(안효영 작곡, 윤미현 대본)는 2012년부터 된 서울시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워크숍 ‘세종 카메라타’에서 선보이는 세 번째 작품이다. 세종카메라타의 첫 작품은 2014년 <달이 물로 걸어오듯>(최우정 작곡, 고연옥 대본), 두 번째는 2016년 <열여섯 번의 안녕>(최명훈 작곡, 박춘근 대본)으로 매번 시대의 문제를 되짚어보는 소재와 걸맞는 음악연출로 새로운 한국형 창작오페라 제작방식을 개척해오고 있다.
세종오페라단 측에서 오페라판 '기생충'으로 소개한 바, 오페라 <텃밭킬러>는 무대와 조명 자체만으로 암울한 생활지옥의 기운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자주색, 푸른색 조명과 빛바랜 가로수, 무대를 가로지르는 전깃줄, 작은 구두수선 컨테이너, 그리고 맨 앞의 변기까지 빈곤함의 덫을 표현하고 있었다.
여기에 분명 오페라이면서도 뮤지컬다운 간결함이 보태진 안효영 작곡가의 음악은, 곡 시작부터 오페라다운 충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가지면서도 주인공들의 가요풍의 애절한 노래로, 빈곤함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하는 문제제기의 역할을 음악이 충분히 수행했다.
창작오페라 <검은 리코더>로 노인문제와 죽음을 무대 위에 올려놨던 윤미현 작가는 이번에는 반대로 처절한 삶의 문제와 사회구조의 문제를 표현했다. 삶의 문제이기에 더욱 신랄한 비판으로 극빈곤층의 삶을 주인공 가족의 이름을 통해 드러냈다.
이 집의 가장 '진로'는 늘 술로 세상을 잊고, 큰 아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청년', 포경수술을 시켜달라는 둘째아들은 '수음', 큰 아들이랑 결혼하는 우크라이나 여자친구는 ‘아가씨’, 그리고 젊을 적부터 지금의 93세까지도 이웃집 텃밭에서 채소를 가져다 식구를 먹여살리는 수음의 할머니이자 진로의 어머니는 ‘골륨’이다.
▲ 오페라 "텃밭킬러". 큰아들 "청년"(테너 석정엽 )과 여자친구 "아가씨"(소프라노 이세희).
좌절스런 현실과 미래에의 희망을 동시에 상징한다. ⓒ 박순영 기자
극중 인물의 상황을 소개하는 1막은 오페라 노래와 대사가 적절히 섞여 있다. 분명 오페라이면서도 좀 더 가벼운 터치감으로 현대물다운 느낌을 잘 살렸다. 큰아들 ‘청년(테너 석정엽)’이 돈이 없어 여자친구 ‘아가씨’(소프라노 이세희)와 자신의 침대에 신접살림을 차리는 장면은 딱하면서도, 젊은 남녀이기에 열정 뜨거운 희망과 생기가 느껴진다.
2막부터는 주역별로 공감가는 아리아들이 대거 터져나온다. 이 집 둘째 '수음'(테너 홍종우)이 "아는 형이 '교육이 산으로 가고 있대'"라면서 마지막에 처절하게 '노~스페이스~'라고 메이커 옷을 사달라고 하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웃을 수만은 없다.
아버지 진로가 집 나간 아내와 메추리 구워 먹던 추억을 노래하는 장면은 코가 시큰할 정도로 가슴에 와 닿는다. 철판에 검게 그을린 메추리알을 구우며 아내의 성대묘사를 하며 살도 없어 비쩍마른 메추리를 ‘뜯어먹어야’ 하는 심정을, 진로 역 바리톤 장철은 그리움의 정서와 아내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의 애증을 담아 잘 표현해 주었다.
뜯어 먹혔던 것은 집 나간 아내의 일만은 아니다. 평생을 뜯어먹히는, 할머니 골륨의 노래는 늙어 부양 받기는 커녕 이 텃밭, 저 텃밭 가족을 위해 유일한 생계수입원으로 활동해야 하는 처절한 외로움을 표현했다. 메조 소프라노 신민정이 “...우리집보다 차라리 남의 집 텃밭이 푹신하겠다..”라며 골륨의 고단하고 처량한 마음을 노래할 때는 순간 눈시울까지 시큰해진다.
▲ 노려보는 진로(왼쪽 끝, 바리톤 장철)의 눈빛이 무섭다. 노모(메조소프라노 신민정) 의
마지막 전재산인 금니 3개마저 뺏으려는 식구들의 원망이 섬뜩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 박순영 기자
왜 이 집에 제일 필요한 할머니가, 이 사람들을 낳은 할머니가 괴물 ‘골륨’이 되었을까? 극내내 배고플 때만 되면 골륨을 찾아대던 나머지 식구들이 93세 자신들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골륨에게 전재산인 금니 세 개마저 내놓으라고 노래하는 대목은 정말 섬뜩하고 처절하다. 진로는 “금니는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끈”이라고, 골륨은 “한 줌 흙이 되고 싶었어”, 그리고 두 손자와 며느리가 “금니를 보고 참고, 참고”라고 부르는 노래는 인생 스트레스의 극치다.
오페라 <텃밭킬러>는 현 세태를 가족 각 배역별로 철저하고 극단적으로 소개해 더욱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었으며, 오페라 기존 어법을 우리말과 극 형식에 대한 철저한 고민으로 과감히 비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날 탄탄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정주현은 공연 시작 전후로 각 파트 연주는 물론 보면대 라이트까지 무대감독에게 세심히 요청하는 모습에서 오페라 공연의 모든 중요부분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프레스콜 이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서울시오페라단 이경재 단장은 "한국 오페라라는 화두로 2012년 세종카메라타에서 계속되어 온 세 번째 작품이다"라면서, "해마다 세종 카메라타는 네 명의 작가와 네 명의 작곡가가 매칭되어 네 개의 작품을 리딩공연으로 올리는데, 그 중 가장 현시대를 반영한 작품이라 선택되었다“라고 공연을 소개했다.
연출의 장영아는 "이번 창작오페라는 연극 대본을 기초로 한 것이다. 대사를 살리고, 한 캐릭터별로 보통의 오페라보다도 더 섬세한 몸짓과 연기를 요청 드렸고, 성악가들이 잘 해주셨다"면서, "무대가 옥상으로 온 것은 땅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구둣방을 옥상에 차리고 있는 비현실적인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진로 역 바리톤 장철은 "진로는 이 시대 중년 남성을 대변한다. 구둣방은 그의 전체 세계이다"라면서 "그가 전쟁을 바라는 것은 이 시대 그를 짓밟았던 모든 것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안효영 작곡가는 "우리말이 주는 어감과 정서를 표현하는 것에 고민을 많이 했다“라면서, 1막 대사처리 부분이 노래여도 좋지 않을까 하는 기자의 질문에 ”이제는 오페라의 외연이 좀 더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기존 서양 오페라에도 실제 대사가 많은 오페라도 있고, 이번 작품의 각 부분에서 최대한 노래여야 할 부분과 대사로 처리해도 가능한 부분을 판단했다 "라고 답했다.
정주현 지휘자는 "창작오페라이다 보니 참고음반 등이 없지만, 종이로 표현된 악보를 실제로 표현해 관객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했다“라고 말했다.
극 중 텃밭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질문에 대한 답은 공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 연 명 | 서울시오페라단 오페라 <텃밭킬러> |
일시장소 | 2019년 7월 3일(수)~6일(토) 수·목·금 19시 30분, 토 17시 |
제 작 진 | 예술감독 이경재 / 작곡 안효영 / 대본 윤미현 / 연출 장영아 / 지휘 정주현 무대 박상봉 / 의상 변미라 / 조명 이중우 / 분장 구유진 / 대사·연기지도 이지혜 |
출 연 진 | 진로(Bar.) 장철 김재섭 / 골륨(M.Sop.) 신민정 김보혜 / 아가씨(Sop.) 이세희 윤성회 / 청년(Ten.) 석정엽 조철희 / 수음(Ten.) 홍종우 도지훈 / 경찰(배우) 유원준 연주 오케스트라 디 피니 |
입 장 권 | R석 7만원, S석 5만원, A석 3만원 |
예매문의 | 세종문화회관 02)399-1000 www.sejongpac.or.kr |
공연문의 | 서울시오페라단 02-399-1783~6 |
(공식페이스북) http://facebook.com/news.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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