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중섭 1막 장면. 왼쪽 마사코 역의 소프라노 오은경ⓒ 문성식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한국근현대미술의 거장화가 이중섭을 소재로 한 창작오페라 <이중섭 - 비 바람을 이긴 기록>이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9 폐막작으로 11일과 12일 양일간 저녁7시반에 성황리에 공연되었다.
제주도에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지낸 이중섭의 삶과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서귀포시와 제주도립서귀포예술단(단장 지휘 이동호)이 제작해 2016년부터 오페레타 <이중섭>으로 매해 공연되고, 올해 처음으로 오페라로서 선보였다.
작년 2018년부터는 김숙영이 대본과 연출을 맡으면서 새롭게 탈바꿈되었다. 제주도의 자연과 사람, 그리고 부인 미즈코와 지낸 시절이 서귀포예술단의 관악합주로 더없이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김숙영 연출가는 오페라다운 강조와 생략의 균형이 잘 맞추면서,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의 아픔을 지낸 화가의 창작의 고통을, 이를 바라보는 가족과 친구들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현석주 작곡가는 2016년 첫 공모때부터 서귀포관악단의 관악합주라는 오페라반주에는 어려울 수 있는 편성을 오히려 특색으로 잘 살렸다. 클라리넷과 오보에 등 관악기의 투명함에 서귀포 앞 바다가 흐르는 듯한 아르페지오 반주형으로 우아함을 주고, 하프와 피아노 반주로 맑음을 더했다. 여기에 더 플레이어즈의 현악주자 9명편성을 더해서 음색과 성부의 보강을 더했다.
1막은 이중섭 삶의 중요한 한때인 제주도에서의 삶을 표현한다. 두 아들의 노래와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정겹고, 제주의 해녀에게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2장에서 중섭의 꿈속 어머니 아리아를 11일 공연의 메조소프라노 김선정과 12일 메조소프라노 오능희는 굵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절절하게 잘 표현했다.
창작오페라 '이중섭' 2막 정치열 중섭의 친구들. 맨 오른쪽 테너 김동원(이중섭 역),
바라톤 김승철(구상 역), 바리톤 서동희(광림 역).ⓒ 문성식
이어 아버지 장례식 때문에 일본에 가야하는 중섭의 아내 마사코가 부르는 아리아는 우아한 선율 속에 소프라노의 기량이 십분 발휘되는 2막 피날레 대목으로 브라보를 받았다. 첫째날의 소프라노 오은경이 남편에 대한 걱정과 원숙미가 느껴지는 맑고 애절한 목소리와 연기로 표현했다면, 둘째날의 소프라노 김유미는 본인 음색의 밝고 힘찬 톤을 살려 화려함을 강조하였다.
2막, 친구 정치열의 집 2층에서 중섭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노래하는 중섭과 마사코의 듀엣이 아름답다. 중섭의 친구인 구상, 광림, 고석, 태응의 4중창이 경쾌하다. 광림이 중섭형님의 그림을 칭찬하는 노래도 인상적인데, 첫날의 바리톤 서동희가 두텁고 단단한 음색과 진지한 연기로 인상을 남겼다면, 둘째날의 김원은 좀더 온화하고 다정다감함이 묻어나는 바리톤으로 표현하였다.
2막 마지막에 중섭의 노래가 고음으로 치달으며 우리가 이중섭하면 익히 알고있는 숫소 그림이 완성되며 무대 영상 가득히 보이는 장면은 브라보 그 자체이다. 테너 이동원은 작년부터 연기한 이중섭이기에 방황으로부터 성공까지의 장대한 서사가 느껴지는 노래였다면, 둘째날의 정의근은 본래 테너가수로서의 팽팽하고도 중후한 음색이 찬란하게 펼쳐지는 느낌으로 표현했다.
3막 미도파 백화점 개인전에서 이중섭의 그림과 업적에 대해 관람객들이 합창(서귀포합창단, 언북중학교 한울중창단)으로 칭송하는 장면이 웅장하다. 무대영상에 중섭의 그림이 보여지면서, 친구들이 한명씩 중섭의 그림 '서귀포의 환상'(51년작), '흰소'(54년작) 등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장면도 뭉클하다.
오페라 '이중섭' 3막 미도파백화점의 개인전 장면. 이중섭의 친한친구였던 시인 구상(가운데 노래,
바리톤 김승철 분)이 중섭의 그림을 칭송하고 있다. ⓒ 문성식
이내 음악이 긴박해지고, 경찰이 이중섭의 그림을 춘화라 하며 전시회를 철수하게 한다. 이 때, 친구 구상의 '두 팔 벌려 너를 안아주고 싶다, 다시 해보자. 너는 나의 친구이니까'라는 가사의 아리아가 잔잔하고 힘찬 내적 울림의 감동을 주며 브라보를 받았다. 첫날 배역의 바리톤 김승철이 명료하고 짙은 음색으로 어필했다면, 둘째날의 바리톤 박근표는 좀더 두텁고 서정적인 음색으로 우애를 전달하였다.
4막 정신병원, 병원에 친구들이 찾아오고, 구상이 부르는 “인생은 무엇인가, 예술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라고 노래부르는 가사가 와닿는다. 중섭은 '정직한 화공될 수 없을까'라고 노래하던 중섭은 '안녕, 사랑하는 모든 이여, 난 그곳에서 자유하리' 라며 무대 뒤의 밝은 섬광안으로 사라진다.친구들과 마사코, 어머니가 다같이 '그대 있어 행복했네'라고 합창한다. 이 때 무대 가득, 중섭의 그림들이 순서대로 보여지며 마지막에 황소그림이 무대가득 펼쳐지며 팡파르로 대단원의 피날레가 마무리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정말로 바라는 게 있을 때는 그것이 '없다'고 표현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문화가 없다, 정체성이 없다, 오페라가 없다, 법질서가 없다 등등..사실은 없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지고 싶은 강한 열망이 항상 가득하기 때문에 늘 조급하고, 조바심이 많은 것이 아닐까.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소중히 생각하고 정성스럽게 다듬는 세공의 기술, 연구하는 자세, 넉넉히 투자하고 오래 기다려주는 여유, 공정한 질서가 필요하겠다.
우리의 창작오페라가 '있다'. 각 시도지자체, 아르코 창작산실, 세종카메라타, 국공립, 민간오페라단 등에서 무수히 노력하고 만들어왔다. 없는 것이 아니다. 창작오페라 '이중섭'만 해도 2016년 만들어서 4년간 세공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역사의 정신을 기리고 그로부터 현재를 되짚어 보는 예술의 역할 면에서, 창작오페라 '이중섭'은 그 시대의 아픔을 소화하여 우리의 오늘을 살게 하는 에너지를 회복시키는 점에서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 노래와 음악, 미술과 의상, 합창으로 다같이 보여줄 수 있는 총체예술 오페라만이 할 수 있고 우리말 창작오페라만이 할 수 있는 일, 오페라 '이중섭'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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