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제77회 (사)한국여성작곡가회 가을 정기발표회가 ‘비상’을 주제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위로앙상블과 김예지나, 김준영, 박치완의 연주로 지난 17일 저녁 7시 30분 열렸다.
지난 봄 정기발표회가 ‘도약’을 주제로 했다면 이번 ‘비상’은 한국과 서양악기의 다양한 편성으로 더욱 다채롭고 한 단계 높이 날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첫 곡 성예람의 '타래'는 나희덕의 시 ‘분홍신을 신고’ 중에 “내 속의 실타래가 한 없이 풀려나와요”라는 시구를 해석했는데, 대아쟁(김예지나) 소리도 후련하고 좋거니와 긴 활대와 작은활대의 분할, 퉁기는 소리, 글리산도 등 다채로운 주법과 역동적 전개가 현대창작음악 듣는 묘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말 그대로 타래 꼬인 것을 푸는 방식이 곡 전개에 그대로 담겼다. 산조의 전통주법을 지키고 변용하면서 중간에 장단놀음을 하며 작곡가의 의도대로 익숙함 속의 낯섬이 잘 구체화되었다.
임재의 작곡가의 '다시 여기...'는 피아노 트리오 곡으로, 들으면서 인과관계와 논리를 배울 수 있었다. 첫 피아노(이은지)의 증감음정이 계속 되며 음산한 분위기를 주는데, 여기에 첼로(윤석우) 쥬테 의 네 음이 더해지고 글리산도, 술 타스토 등 주법으로 바이올린(박신혜)과 간헐적으로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형성한다.
피아노가 주체적인 ‘나’라면 그것이 분투하는 의지를 가지고 끈기있게 바이올린과 첼로에 에너지를 전달해 모양을 형성한다. 1곡도 좋았지만 2곡 또한 탄력과 기대감이 있어서 더욱 집중되었으며, 마지막 즈음 바이올린을 8번 튕기는 피아니시모의 바이올린 쥬테도 인상적이었다. 잔잔하게 귀결되며 ‘다시 여기’를 표현했다.
우미현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증식'은 세 개 악장의 곡이었다. 피아노포르테 연주자인 작곡가의 동생이 요청하여 작곡된 곡으로, 악기의 특성을 살리려 작곡가 또한 미니멀리즘 기법에 도전하며 작품을 썼다. 반복되며 빠른 진행감의 1악장에서는 증음정과 중고음역의 투명함으로부터 화음을 형성하며 집중력이 있었다.
반복 16분음표 중심으로부터 처져가며 증식하는 과정을 표현했으며 그 교차되는 리듬감이 의미있었다. 요사이 AI가 대세인데, 작곡가는 의도적으로 피아노(이은지)에게서 ‘아름다운’ 톤을 제거해, 기계적으로 속주하거나 울퉁불퉁 요철처럼 진행되는 컴퓨터 연주 같은 실험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강종희의 피리, 거문고, 첼로를 위한 '해령-Black Smokers'은 이날의 두 번째 국악악기 작품으로 공연에 특색을 주었다. 바다 속 수천미터 깊이의 중앙해령 곳곳에서 뜨거운 광물이 검은 열수로 뿜어져 나오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거문고(김준영)의 퉁김은 뜨거운 열수와 해저산맥이 되고, 피리(박치완)의 담대한 선율이 물의 흐름과 힘을 느끼게 하고, 첼로(윤석우)의 비브라토가 물결을 표현하며 다른 두 악기 사이를 이어주고 있었다.
세 악기는 자연현상에 대해 경의를 표현하며, 셋이 동음을 피치카토, 트레몰로, 비브라토로 연주하며 음 이동을 할 때는 함께 배를 탄 것 같은 흥취가 있었으며 자유롭고도 그로테스크했다.
강은경 작곡가의 <Work in Progress>는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첼로의 네 개 악기 편성으로 힘있는 유니즌으로 시작했다. 투명한 텍스처를 가지고 주제 Tritone(3온음)과 장2도를 기본으로 짧은 음가들이 배음렬로 비상, 도약, 스타카토로 진행된다.
피아노(이은지)는 고음과 저음을 오가며 빠른 아르페지오와 증음정과 클러스터의 타격음을, 클라리넷(정성윤)은 플라터 텅잉, 바이올린(박신혜)과 첼로(윤석우)는 하모닉스와 지속음, 술 폰티첼로와 트레몰로로 운동한다. 제목이 ‘진행 중인 작품’이라는 뜻이므로 표제가 있는 작품처럼 특정 형상을 그리거나 담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작은 요소들이 짧은 시간단위에 결합되는 운동성으로 곡이 생성되며 열린 결말을 향해 힘차게 뛰어간다.
권은실 작곡가의 첼로 독주를 위한 <Cappriccio>는 ‘카프리치오’(이탈리아어로 ‘변덕’, ‘공상’을 뜻함)라는 말 그대로 즉흥성과 푸가 스타일이 겸비되었다. 큰 붓터치로 한지에 글자를 써내려가듯, 중음주법으로 묵직하게 눌러 시작하여 급격하게 글리산도로 상행하여 하모닉스로 음에 도약하는 진행이 주를 이루며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공연 주제인 ‘비상’을 위해 저음악기 첼로(윤석우)의 고음역과 하모닉스가 트레몰로가 결합되어 사유적이면서도 운동성이 강한 곡을 이루어 인상을 남겼다.
일곱 번째로 신숙경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침묵과 욕망'이 대미를 장식하였다. 노벨문학상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엘프리데 옐리넥의 장편소설 ‘욕망’을 바탕으로 씌여진 곡으로, 1악장은 주로 얇고 투명하게 끊임없이 주장하는 현악기(박신혜, 허상미, 변정인, 윤석우) 트레몰로와 트릴의 울림으로 자본주의에 희생되는 여성의 아픔을 표현한 듯했다.
바이올린의 극고음, 타협이 없는 불협화로 계속되는 현악기의 외침으로 페미니즘적 시각을 대변했다. 2악장에서 제1바이올린의 고음은 계속되지만 넓은 음역대로 벌어져 불협화의 호모포닉한 강렬한 움직임에는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가 오버랩된다. 이 곡에서 ‘비상’은 나선형으로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슬러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며,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여인의 ‘욕망’을 표현하며 3연음부 힘찬 반복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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