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막은 광활한 바다 배경에 포경선 위 선원들의 합창으로 시작한다. ⓒ 국립오페라단
[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지난 11월 18, 20, 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국립오페라단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으로 오랜만에 오페라 보는 재미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바그너의 초기 오페라를 원전 그대로 휴식 없는 2시간 20분의 공연은 집중도가 있었으며, 탄탄한 독창, 규모 있는 합창, 세련된 무대구조와 연기로 1974년 국내초연 이후 41년 만에 공연되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국내에 잘 ‘상륙’시켰다.
20일 금요일 공연에는 예정이었던 달란트 역의 베이스 연광철 대신 김일훈이 맡았다. 16일 프레스 리허설에서 극찬을 받았던 연광철의 무대도 출중했겠지만, 그가 없는 20일 공연 또한 좋았다. 국내외 성악가들과 무대, 오케스트라가 모두 기가 막힌 ‘훌륭함’보다는 국내에서 만나기 힘든 바그너의 좋은 작품을 음악에 과도하게 압도되지 않고, 관객이 음악을 통해 이야기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는, ‘좋은 밤 좋은 공연’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국립오페라단과 '박쥐'(2012, 2014), '오텔로'(2014)로 호흡을 맞춘 스티븐 로리스 감독의 연출은 세련된 무대와 설득력 있는 극을 선사했다. 지역마다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전용극장이 있는 유럽의 ‘우리 동네 극장의 오늘밤 공연’ 처럼, 바그너가 직접 쓴 대본으로 곡까지 쓴 이 작품의 이야기를 장장 2시간 반인데도 피로하지 않고 편안하게 관객도 ‘한 호흡’으로 볼 수 있게끔 했다는 점이 크게 박수쳐줄 만하다.
▲ 1막. 붉은 핏빛바다를 배경으로 상어입에서 네덜란드인이 등장한다. ⓒ 국립오페라단
우선, 무대는 거대한 포경선 구조를 3막 내내 잘 활용했다. 위 부분의 붉은 거친 무늬는 붉은 조명일 때에는 피처럼, 평상시는 오랜 항해로 녹슨 무늬처럼 조명에 따라 다양하게 느껴졌다. 서곡에서는 바다의 거센 물결과 고래잡이배, 항해의 벗 갈매기의 모습이 3D맥스 영화관처럼 생동감과 앞으로 공연의 기대감을 준다.
1막이 시작되고, 배 위에 선원들이 힘찬 합창을 하고, 멀리 배 앞머리 쪽에 바다 물살 영상이 드러나 보인다. 선장 달란트(베이스 김일훈)와 조타수(테너 이석늑)가 노래하고, 곧 붉은 피바다를 배경으로 상어의 입에서 창백한 피부, 풀어헤친 긴 머리, 붉은 가죽옷의 네덜란드인이 등장한다. 그는 오랜 항해로 가진 금은보화를 주며, 달란트에게 딸이 있냐고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달란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네덜란드인의 거래를 받아들인다.
네덜란드인 역 바리톤 유카 라질라이넨의 창백한 얼굴과 험악한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데, 긴장과 이완을 잘 조절하는 그의 안정된 노래까지 좋다. 달란트 역 베이스 김일훈의 탄탄하고 충실한 중저음과 물질에 대한 일종의 탐욕스런 연기,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듀엣은 이후 1막 마지막 남성 합창단의 합창소리보다 오히려 더 크고 집중감이 있다.
▲ 2막은 세련된 무대, 여성합창과 젠타 역 마누엘라 울의 연기와 노래가 인상깊었다. ⓒ 국립오페라단
2막부터 본격적으로 흥미롭다. 1막이 남성위주에 전통 이태리오페라 같은 느낌이라면, 2막은 여성의 부드러움과 현대오페라의 세련됨이 있었다. 1막과 같은 무대셋트인데도 고래기름공장에 30여명 여공들이 붉은 앞치마에 노란 장화 푸른 셔츠를 입고, 일사불란하고 박자에 맞춰 바퀴를 돌리며 기름을 짜고 고음으로 노래 부르는 모습에서 전혀 다른 장소적 느낌이 신선하다. 주인공 젠타가 영사기를 돌려 갈매기와 물결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이 동경하는 얼굴이 창백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막 여성들의 합창과 젠타 역 마누엘라 울의 솔로가 1막 남성들의 노래보다 훨씬 맛깔스럽고 힘이 넘친다. 젠타를 사랑하는 육군 에릭 역의 테너 김석철도 젠타의 어깨를 감싸 안고 그녀가 떠나는 꿈을 꿨다며 무척 감미롭고도 선명하게 노래 불러 집중감을 주었다. 달란트가 젠타를 네덜란드인에게 소개한다. 유카 라질라이넨은 1막에서보다 훨씬 힘을 다하여 젠타에게 정절을 지킬 거냐며 알찬 노래를 불러 공감을 주었고, 마누엘라 울 역시 풍부한 성량과 호흡으로 두 주인공의 사랑과 숙명을 느끼게 해주며 듀엣이 한참 계속된다.
▲ 2막 젠타(마누엘라 울)와 네덜란드인(유카 라질라이넨)의 듀엣.
절절한 운명의 저주와 사랑을 충실한 호흡으로 노래했다. ⓒ 국립오페라단
3막에서는 선원들과 여자들이 갑판 위에서 파티를 하며 유령선 이야기를 합창으로 한다. 국립합창단의 혼성합창과 연기가 3막에서 빛을 발하며, 심리뮤지컬처럼 음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세련됐다. 에릭이 젠타의 사랑에 실망하는 얘기를 하고, 이에 네덜란드인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젠타는 충절을 맹세하며 무대 뒤 바다로 뛰어든다. 네덜란드인의 저주가 풀리고 젠타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갈매기가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영상으로 암시했다.
공연 초반 서곡과 1막에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다소 금관악기의 음이탈과 타이밍 불일치를 보였으나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세계적인 오페라 지휘자답게 랄프 바이커트는 바그너 작품에서 긴장과 이완의 맥을 짚으며 오케스트라를 큰 호흡으로 이끌어 반주의 역할을 제대로 살렸다.
한편 국립오페라단은 2015년 일정으로 <라 트라비아타>를 11월 27, 28일 천안예술의전당, 1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2월 23, 24일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2016년에는 <루살카>가 4월, <오르페오>가 5월, <국립 오페라 갈라>가 6월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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