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뉴스 박순영기자] “역시 모차르트가 모차르트했네!”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국립오페라단 '피가로의 결혼'을 보며 든 생각이다. 국립오페라단이 25년만에 공연하는 '피가로의 결혼'은 익숙한 제목에 비해 '라 보엠'이나 '토스카'만큼 자주 공연되지 않는다.
세 시간이 넘는 작품길이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간 주고받는 갈등요소를 모차르트답게 아기자기하고도 힘 있게 표현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모차르트 다 폰테 3부작(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을 연출한 바 있는 연출가 뱅상 위게와 무대, 의상 디자이너 피에르 요바노비치에 의해 모던하고 심플하게 풀렸다.
백작부부와 하인이라는 계층을 의미하는 2층집이지만 흡사 강아지 옆모습인 AGATHA - PARIS 브랜드 로고처럼 귀여운 집 모양이 친근하고 편안함을 준다.
1막에서 1층 벽 기둥이 동물의 네 다리 같았으며 2층 꼭대기의 창문은 왕관 같기도 하다. 2막에서 무대가 회전하고 2층 마당을 1층부터의 얇은 벽기둥이 받친 모습은 '피가로의 결혼' 전체를 중요하게 반주 중인 쳄발로의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조금 떨어진 곳의 별채는 경주 첨성대 같기도 하고, 나선형 모양이 동물의 ‘똥’처럼도 보인다. 무대 벽은 한국전통 무지개떡의 오방색이어서 친숙함과 경쾌함을 준다.
오페라가 24시간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표현을 위해 무대 벽에 원형의 태양모습이 이동한다.
이에 따라 막 별로 조명과 명암이 달라지는데 PC 온라인게임 마인크래프트의 셰이더(Shader)처럼 느껴지며 심플함과 최첨단을 보여주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원래 연극작품이었다. 프랑스의 희곡작가 보마르셰가 1781년 ‘피가로의 결혼’을 내어놓은 후 당시 전통대로 검열을 받아 처음에는 통과되었지만, 귀족계급에 대한 풍자 때문에 루이16세에 의해 금지령이 내려졌다.
이에 보마르셰는 3년간 수정을 거듭했고 1784년 금지령이 해제되어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에서 초연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 대한 보마르셰의 불평스런 언급이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로 그는 생 라자르 감옥에 5일간 갇히기도 했지만, 이후 연극 ‘피가로의 결혼’은 68회 연속공연을 할 만큼 인기였다.
18세기 계급사회를 비판하는 선풍적 인기의 작품이었기에 모차르트는 로렌초 다 폰테에게 이탈리아어 오페라 대본으로 부탁하고 작곡해 1786년에 오페라를 초연하게 된다.
모차르트 작곡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피가로와 결혼하는 수잔나에게 백작이 ‘초야권’(결혼하는 신부에게 주인이나 영주가 첫날밤을 먼저 치루는 권리)을 행사하려 하고 이를 백작부인과 수잔나, 케루비노가 함께 막으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코믹하고 기품있게 노래로 풀어낸다.
원작에서 18세기 스페인 남부 세비야가 배경인 것을 이번 국립오페라단 무대에서는 1930년대의 패션 스튜디오로 설정했다. 백작부부는 금색의 유광 의상이고, 재단사인 피가로와 수잔나는 무광의 블루컬러로 공장 노동자를 연상시킨다.
극 중 배경이 의상실임에 비해 두 계층의 옷은 모두 무늬 없이 재단만 된 실루엣 형태인데, 이것은 의상실을 옷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공간’으로 상징한 듯 보인다.
한복에서도 착안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조선시대보다는 삼국시대에 가까웠으며 원작의 지중해 스타일로도 느껴졌으며, 내용이 하룻밤 내용이라 그런지 잠옷처럼도 보였다.
이렇게 시각적 요소들의 뒷받침으로 주역들의 노래는 더욱 빛이 났다.
20일 첫날 공연에서 피가로 역 바리톤 김병길은 1막 아리아 ‘더 이상 날지 못하리(Non piu andrai)’에서 선이 분명하고 중후한 목소리로 극 초반에 활력을 주었다.
이날 유일하게 외국인 성악가였던 케루비노 역 메조소프라노 라헬브레데는 2막 아리아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는가(Voi che sapete)’를 큰 키에 맑고 풍성한 음성으로 선사하며 백작부인을 위로하는 대목을 잘 표현했다.
주인공들은 케루비노를 여장시켜 백작을 골탕 먹이려는 계략을 짜며 음악은 3중창이 5중창, 7중창으로 확대되며 신나는 욕망의 결투를 펼치며 2막이 화려하게 끝난다.
성악가들의 훌륭한 연기와 노래로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워졌다. 바리톤 양준모는 3막 아리아 ‘내가 한숨지을 때 저 천한 놈이(Vedro mentre io sospiro)’에서 복수에 찬 백작의 마음이 느껴지게 힘차게 정확한 음으로 선사하며 관객의 브라보를 받았다.
이번 연출에서는 패션브랜드 CEO로 역할하는 백작부인에 특히 비중을 두었는데, 2층 발코니에서 소프라노 홍주영이 3막 아리아 ‘아름다운 날은 가고(Dove sono)’를 집중감 있는 호흡과 풍성한 음성으로 부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사랑에 대한 완벽하고 거역할 수 없는 다짐으로 다가오며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갈채와 브라보를 받았다.
이 아리아의 후주 연주 느낌을 보자면 이 날 다비드 라일란트 지휘의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적절한 템포와 직조감이 살아있는 연주도 오페라의 탄탄한 감상에 훌륭한 한몫을 했다.
이어진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편지의 이중창-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Sull'aria - Che soave zeffiretto)에서도 2층에 백작부인이 1층에 수잔나를 위치시켜 계층구조를 나타냈으며 또한 수잔나 역 소프라노 이혜정은 편지를 받아 적으면서도 아니꼽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을 흘겨가며 소심하게 반항하는 모습으로 인상을 주었다.
4막 수잔나의 아리아 ’지체 말고 와다오 기쁨이여(Deh, vieni non tardar)에서는 수잔나다운 고음의 선이 살아있는 목소리로 기쁨에 찬 아리아를 선사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찬미하자, 지혜로운 백작님을! 모욕적인 악습을 폐지하여 연인들에게 순결을 선물하셨네!” 마지막은 결국 해피엔딩이다.
결국 되찾은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식 장면의 율동이 흥겨웠으며 커튼콜 후 앵콜 때에도 지휘자와 국립합창단, 전체 출연진이 모두 이 춤을 추면서 훈훈한 마무리를 했다.
1막에서 수잔나가 케루비노를 숨겨주는 장면, 4막에서 백작이 결국 잘못을 뉘우치며 부인에게 꼬리를 내리며 용서를 구하는 장면 등으로 관객들은 오페라를 보면서 웃을 수 있었다.
공연 직후 옆 좌석 관객이 “진짜 잘 봤다”고 하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이 오페라 부파의 매력 아니겠는가.
이번 25년만의 국립오페라단 '피가로의 결혼'이 서양오페라가 아니라 마치 90년대 TV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이나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 같은 친숙함을 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음악은 동서양이 필요 없으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해석도 정말 AI가 할 수 없는 21세기 이제부터가 시작이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차르트는 투쟁하지도, 물러서지도 않으면서 음악으로 유쾌하게 계급을 타파하고 한 발 앞서나갔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상황과 예술계인사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혹시 모차르트가 답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mazl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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